이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읽은게 아마도 십X년 전인거 같다. 그 때는 너무 어려서 몰랐지 이렇게 슬픈 연극인 줄.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감정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 두뇌회전은 매우 느려진 거 같은데 가만 보면 십년 전에는 이해도 못했던 게 조금씩 눈에 들어오더라. 이것이 바로 "연륜"인 것이지. 근데 그렇다고 매우 좋을 일은 없다는 게 문제. 미국 애들은 다들 고등학교에서 세일즈맨의 죽음 읽는 줄 알았는데, 내 뒤인지 앞에서 들어가던 커플 중 하나가 무슨 내용인 줄 모른다고 해서 나는 속으로 깜놀. 막 만나기 시작한 커플같던데, 여자가 이렇게 말하자 남자가 (안봐도 느껴지는 으쓱함) 자기는 안다고 얘기해 주겠다고 ㅋㅋㅋ
이건 돈을 긁어모으려고 작정하고 만든 연극인가 자리도 엄청 비쌌다. 왠만하면 메자닌 센터 앞자리를 잡는데, 너무 비싸서 (다른 연극 오케스트라석보다 비싸!) 그 동안 넋놓고 안 사고 있었다는. 프리미엄 좌석은 400불이 넘어간다고. 나는 제일 싼 자리, 그나마 혼자라 운좋게 자리 하나 남은 거 잡아서 보러갔다. 안보면 후회할까 싶어서... 필립 시무어 호프먼과 앤드류 가필드가 나와서는... 쿨럭. 아, 속물.
내용이야 뭐 "아서 밀러 연극"이라고 그냥 온몸으로 뿜어내는 신파이다 (그러고 보니 All My Sons랑 결말 헷갈렸구나). 전형적인 갈등 요소는 다 나온다.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세일즈맨이지만 지금은 나이도 많아 능력도 떨어져 정신도 이상해졌고, 어머니는 그저 남편과 자식만 바라보고 산 가정주부. 아들내미 둘 있는건 어릴 때는 잘나가다 이십대에 주저앉아, 삼십대가 된 지금은 빌빌거리며 밥벌이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 주변에 나이드신 분들이 훌쩍훌쩍하시던데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은퇴해서 이거 보러 오신 분들은 아주 한에 사무쳤을 듯. 몸 바쳐 일하던 직장에서는 나이 많다고 나가라고 하지, 자식들은 오냐 오냐 키워놨더니 이유도 없이 삐딱선 타고 있지, 믿을 건 그 동안 자기가 쌓아온 덕망이라 장례식에는 사람들 많이 올거라고 기대하고 있는데, 막상 죽으면 가족 빼고는 아무도 안 올게 뻔하고. 아 너무 슬프다. 2차 세계대전 후가 배경이고 1929년 대공황 때로 왔다 갔다 하면서 사건이 전개되는 연극인데 시대에 뒤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심금을 울리는 뭔가가 있더라. 부모님 모시고 가서 보고 싶은 연극이랄까 (부모님의 결론은, 그러니까 살아있을 때 잘 해, 겠지만). 그러나! 자리가 너무 뒤라 보느라 힘들고, 앞에 앉으신 분의 머리는 또 왜 그렇게 정가운데를 가려주시는지. 옆에 앉으신 분은 코를 후비고 계신지 얼굴을 문지르고 계신지 엄청 거슬리고. 나는 배고파서 아 끝나면 빵 사먹어야지 이러고 있었다는.
필립 시무어 호프먼의 윌리 로먼은 목소리가 매우 컸다. 몸도 매우 컸다. 너무 젊다고 처음 캐스팅됐을 때 좀 까인 것 같다만, 20년 왔다 갔다 하는데도 괜찮더라 (잘 안 보여서 몰라!). 정작 윌리 로먼은 옷도 안 바뀌는데 말이다. 독선적이지만 그래도 자식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버지의 모습. 앤드류 가필드는 윌리 로먼의 장남인 비프 로먼으로 출연. 아버지를 사랑하면서도 아버지의 본 모습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갈등하는 (거기다 뭘 하고 싶은지도 제대로 모르는) 청년 역할인데, 아버지와 대치하는 장면이나 감정을 쏟아내야 하는 장면이 꽤 많다. 작년에 Through the Glass Darkly에서 캐리 멀리건의 미쳐가는 여자 연기하는 거 보면서도 아, 이거 일주일에 8번 하려면 진짜 힘들겠다 싶었는데, 앤드류 가필드도 대단 +_+ 하지만 나는, 머리 엄청 작구나, 하는 생각을 주로 하고 있었다는. 해피 로먼 역은 또 작년 The Illusion에서 주연을 맡았던 (그러나 이건 off-broadway) 핀 윗락. 멀어서 안 보였어... 엄마 역의 배우도 훌륭했다. 너무 젊은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그러나. 이 모든 걸 제치고. 이번의 하이라이트는! 일단 일찍 나왔고, 스테이지 도어가 엄청 가까웠고, 낮이라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처음으로 스테이지 도어 옆에 서 봤다는 것. 초짜 흉내 제대로 내면서 자리도 못잡고, 사인은 별로 관심이 없어서 받을까 말까 하다 플레이빌 딱 맞춰 떨어뜨리고 -_-;; 사진 찍었는데 역동적 사진과 등짝이 나와서 쳇. 앤드류 가필드는 냉정하게 휙 걸어서 도망가버렸고 (물론 앞줄의 사인은 다 해줬다), 필립 시무어 호프먼은 저녁 공연을 준비하며 안 나왔다는 이야기. 다른 배우 하나는 사인 요청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머쓱해하며 떠났다. 그리고 나는 또 이렇게 배우를 탐하며 (star-struck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으나 과거가 내 발목을 잡는구나) 댄 스티븐스의 브로드웨이 데뷰를 대놓고 기다린다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