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피디아에 올라와 있는 Another Country 1983년 포스터. 이런 모습 흔하지 않지. 1981년에는 루퍼트 에버렛, 82년에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 1983년에는 콜린 퍼스가 Guy Bennett (가이 버제스가 모델)역. 다들 잘 나가는구먼. 루퍼트 에버렛은 89년에 커밍아웃한 걸로 아는데 이거 연기하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콜린 퍼스는 영화에서는 좀 덜 반항적이지만 사회주의/막시즘에 이끌리는 가난한 집안의 수재, Tommy Judd로 출현. 오리지널 연극에서는 케네스 브래너가 맡았던 역이라고.
이거 찍을 때 루퍼트 에버렛이랑 콜린 퍼스랑 사이 엄청 안 좋아서 말싸움하고 그랬다는데 (몇 년 전에 루퍼트 에버렛이 인터뷰하면서 사실 처음에는 콜린 퍼스 좋아했었다고 (FANCY) 고백 ㅋㅋ 콜린 퍼스가 기타 꺼내서 촬영 중간 중간 민중가요 같은 거 부르기 전까지만) 2001년에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 같이 찍더니 St. Trinians 까지 2편이나 더 찍고 거의 매번 같이 노래 부르고 러브씬 찍고 난리도 아니다. 난 이거 확인해보려고 -_-;; 루퍼트 에버렛 자서전까지 사고. 읽다 말다 했는데 오늘 다시 보니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 찍을 때 콜린 퍼스랑 같이 마리화나 피우다 걸렸다는 이야기도 나오는군. 콜린 퍼스 측에서는 노 코멘트 했을 듯.
1996년에 나온 십이야를 다시 봤다. 이모진 스텁스는 키도 크고 몸도 좋은데다 얼굴 골격도 남자 같아서 수염 하나 달랑 붙여놔도 남자로 보인다. "세익스피어 인 러브"의 기네스 팰트로도 키 크고 얼굴 크지만 그래도 뭔가 섬세한 면이랄까 아니면 그 동안의 이미지 메이킹이랄까 그런게 있어서 딱히 남자답다는 건 못 느꼈다만. 십이야는 세바스찬 역을 맡은 배우랑 이모진 스텁스가 꽤 닮기까지 해서 더 그럴사하다. 키도 비슷한지 아니면 그렇게 보이도록 촬영을 한 건지. 당시 트레버 넌(십이야 감독)이랑 이미 결혼을 했던 듯한데 아무리 nepotism이 만연해도 캐스팅 잘 못했다는 말은 안 들었을 거 같다. 십이야는 원문으로 읽은 적도 없지만 그래도 항상 두 여자 주인공이 중심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올시노 무시했지 아마 -지금 다시 보니 나의 불순한 마음 탓인지 올시노가 많이 띄는구나.
올시노 공작 역(그런데 왜 count 라고 하는 걸까. 백작이었나)의 토비 스티븐스는 정말 남자다운데 헐리우드 스타처럼 정제된 면은 덜해서 뭔가 부족하다고 해야하나 더 인상적이라고 해야 하나. 영국 배우지만 미국인의 상징인 개츠비 연기가 전혀 어색하지도 않은 것은 완성품이 아니라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이야 40이 넘어서 뭔가 원숙미도 있지만 -그래도 한 50은 되야 안정적일 분위기- 아직도 소년같은 면이 있다 (이건 순전히 작년에 방송한 라디오 골드핑거에서 토비 스티븐스가 맡은 제임스 본드 역이 boyish했다는 기사를 읽었기 때문인지도) 주름은 비록 자글자글 하지만 ㅠㅠ 거기다 코가 마음에 드네. 내 이상의 코는 탐 크루즈 코였던 같은데 이제 토비 스티븐스 코로. Pert nose 라는 표현을 어떤 기사에서 썼는데 코가 잘 움직여서 (콧구멍이 좀 튀긴하지) 그런가. Expressive eyebrow는 알고 있었지만 expressive nose라 ㅋ 거기다 왼쪽만 올라가는 입꼬리하고. 그리고 발성이 생각보다 안 좋은 듯. 목소리가 크게 올라가면 뻥 뚫리지 않고 약간 쉰다. 흑. 콧소리도 작렬. 요즘 맘에 드는 토비 스티븐스의 nasal word는 behind. 버,하(여기서 콧김 한방)인드 이렇게 발음하는 거 따라하는 중.
십이야 생각하다가 샜다. 남녀 전환이랄까 남장 여자랄까 이건 엄청나게 고전적인 주제인데 당시의 사회상을 생각해 보면 이게 고정관념과 전통과 권위에 대한 전복인지, 그저 재미인지 아니면 당시 gender 자체가 딱히 고정이 된 게 아니었는지 잘 모르겠다. 거기다 다 좋은데 제일 이해할 수 없는게 올리비아와 세바스찬의 결혼. 내막이 다 밝혀졌어도 굳이 결혼해서 산다고 ㅠㅠ 이 둘이 과연 잘 살았을까 싶다. 요즘 가족 관련된 책을 너무 많이 봐서 결혼에도 매우 회의적이다. 비올라와 올시노는 잘 살았을 듯. 올시노가 올리비아를 쫓아다녔던 것도 그냥 겉모습만 보고 반해서 그런 건데 나중에 비올라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자 매우 기뻐하며 반긴 게 웃겼지. 토비 스티븐스의 다소 능글맞은 얼굴과 함께. I shall have share in this most happy wreck이라고 했던가. 셰익스피어 작품에 항상 등장하는 fool과 노느라 정신없는 사람들 모습도 매우 재미있다. 여기서도 초점은 여주인공. 거기다 세비스찬과 안토니오의 관계는 과연 무엇인가. 어렸을 때 동화버전 읽으면서도 나는 항상 궁금했다고!!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햄릿에서도 남자 주인공과 그 절친의 관계가 애매하다. 여자는 단지 매개인 것인가. 셰익스피어는 단지 첫눈에 반하는 것에 집착했던 것인가. Measure for Measure 보니까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십이야의 또 다른 주인공은 광대역의 벤 킹슬리다. 여기서 노래를 불러주며 분위기를 돋구는 한편 유일하게 비밀을 알아채는 현자의 역할도 한다. 예전에 벤 킹슬리의 간디 영화에 대해 읽고 이거 blackface냐 (엄밀히 말하면 yellowface일까) 끌탕한 적이 있는데 알고보니 아버지가 인도 사람. 절반은 인도인이니 간디역을 맡아도 뭐라 할 말은 없었겠더라. 근데 그냥 보통 역에서는 전혀 표가 안나서. 나이젤 호손은 2000년대 초에 이미 세상을 떴다고. 2001년까지만 해도 영화나 TV에서 종종 봤던 거 같은데 왠지 슬프다. 숀 코너리 죽으면 정말 슬플거야.. 이안 맥켈런이나 마이클 갬본도. (멀쩡한 사람 미리부터 보내고 있다 -_-;;)
어떤 분의 은혜로운 트윗을 보고 이안 맥켈런이 BBC 라디오 드라마 on 3에서 조지 버나드 쇼의 Widowers' Houses(한국어로는 홀아비의 집이라고)를 공연한다는 걸 알게 됐다. 전에도 BBC 라디오 방송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훌륭하다니. 어렸을 때 가끔 새벽에 라디오 듣다 보면 드라마를 해주곤 했었는데 19금 드라마나 정치색 강한 (반공 중심/ 혹은 제5공화국 분위기) 드라마만 있다는 느낌이어서 나중에는 관심을 갖은 적이 없다. 오히려 그냥 오디오북을 찾았지 라디오 드라마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는데. 요즘 며칠 동안 계속 라디오 드라마 녹음해서 듣고 있었다는. 거기다 은혜로운 BBC는 다시 듣기도 된다. 일주일 동안이나! Widowers' Houses를 시작으로 The Woman in White 4부작, 오늘은 The Vanishing, 그리고 유투브에서 The Homecoming 과 Brideshead Revisited 까지. 완전 신났다.
Widowers' Houses는 조지 버나드 쇼의 "unpleasant plays" 중의 하나로, 나머지 둘은 The Philanderer (어떤 리뷰에서는 The Plunderer라고 -_-;;)와 Mrs. Warren's Profession 이다. 후자만 생각하고 Widowers' Houses도 매춘굴 이야기인가 했더니 이건 허름한 건물에 세를 놓아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돈을 착취하는, 현재로 말하자면 악덕 부동산업자의 이야기였다. 조지 버나드 쇼는 정말 시대를 앞서나간 사람이었는지, Widowers' Houses는 10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괴리가 없는 훌륭한 극이다. 거기다 엄청난 여자 캐릭터인 블랑쉬는 요즘 나와도 충격적일 듯.
주인공은 해리 트렌치, 귀족 집안 자제이지만 둘째 아들이라 (영국은 장남에게 다 물려주니까) 유산을 많이 물려 받지 못해 할 수 없이 의사직을 선택한다. 유럽 여행에서 신사처럼 보이지만 정확한 직업은 밝히지 않는 사토리어스라는 남자와 그의 딸 블랑쉬를 만나게 되는데, 당연하게도 해리는 블랑쉬와 사랑에 빠지고 사토리어스에게 결혼 허락도 받는다. 단, 해리의 가족에게 승락 및 축복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일은 순조롭게 풀리고 해리와 그의 친구 코케인은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사토리어스의 집으로 향하던 중, 사토리어스의 비서격인 릭치즈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릭치즈는 렌트비를 수금하고 집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는데, 다 부서져가는 집을 수리했다는 이유로 사토리어스에게 해고를 당한다. 부양할 처자식이 있는 릭치즈는 해리에게 호소를 해서 직업을 되찾으려고 하지만 거절당하고 마침내는 해리와 코케인에게 사토리어스의 사업이 어떤 것인지 흘리게 된다. 이상주의자인 해리는, 그런 더러운 돈은 쓸 수 없다, 라고 다짐하고 블랑쉬에게도 아버지의 돈을 받지 말고 자신의 얼마 안 되는 유산으로 (투자한 곳에서 매달 들어오는 돈) 살 수 없겠냐고 호소한다. 물론 신사인 해리는 블랑쉬가 충격을 받을까 두려워 사토리어스의 진짜 사업은 밝히지 않는다. 블랑쉬는 한 성격하는 여자인지라 (이미 극 중에서 하녀도 패고 머리도 쥐어뜯고 한다)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살 수는 없다, 아버지 돈을 안 받겠다는 건 나랑 결혼하기 싫어서 만든 핑계다, 라고 소리지르며 파혼한다. 해리도 화가 나서 코케인을 데리고 사토리어스의 집을 떠난다.
몇 달이 지난 후, 블랑쉬는 여전히 해리를 잊지 못하고 사토리어스는 그런 딸이 안쓰러워 다시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데 마침 릭치즈가 집을 방문한다. 완전히 신사처럼 탈바꿈한 릭치즈. 새로운 부동산 투기에 대해 알아내서 엄청난 이득을 본 릭치즈는 사토리어스에게도 동업을 제안한다. 이미 코케인을 자신의 비서로 고용한 (도와준다고 하지만) 릭치즈. 사실 사토리어스는 해리의 이모인 귀족부인에게 고용되었고 (아마 땅이 귀족부인 소유고 그 위에 지은 집에서 나온 세의 일부가 귀족부인에게 가는 구조) 해리가 받는 유산도 사토리어스의 사업체에서 나오는 형상. 따라서 릭치즈, 사토리어스, 그리고 코케인은 사토리어스의 사업체를 부정하는 건 해리의 유산 자체도 부정하는 것임을 해리를 불러다 강조한다. 이상주의자라 거절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 해리도 부동산 투기를 하면 자신의 이득이 얼마나 증가할 지 듣게 되자 마침내 승락을 한다. 블랑쉬도 아버지의 사업에 대해서 알게 되는데, 블랑쉬가 충격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면 또 오산. 가난한 것도 가난한 사람도 싫은 이 딸래미는 투자를 해서 더 좋은 집을 지으면 그곳에 사는 가난뱅이들은 다 쫓겨나게 될 거라 허름한 집을 고치지 않고 있으며, 자신을 모함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모르는 것이라는 아버지의 변에 넘어간다. 해리와 블랑쉬에게 더 중요한 건 개인적인 미래이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화를 내던 블랑쉬도 결국은 해리에게 마음이 돌아선다. 이 부분에서 에로티카!가 있다고 하는데 안 보이니 모르겠고 (얼굴 붙잡고 내 눈을 봐, 해리가 어딘가를 만지고 -_-;; 둘이 키스로 끝나는데 어디가 에로틱이냐 ㅠ_ㅠ)
이안 맥켈런이 사토리어스 역. 말이 필요없다. 매우 훌륭하다. 댄 스티븐스가 해리 트렌치. 허니서클 윅스가 블랑쉬 역. 댄 스티븐스 연기 잘한다. 찌질하면서 가벼운 역. 거기다 약간 코맹맹이 소리에 이히힛 하면서 웃는 게 귀여워 ㅠ_ㅠ 허니서클 윅스도 훌륭하다. 허스키한 목소리에 훌쩍이는 소리도 내고 (it makes no difference 에 코 훌쩍하면 whatever, I'm bored 의 뜻이라고... 코 훌쩍 하길래 감기걸렸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 소리지르는 거 하며 훌륭했다. 간만에 재미있는 드라마를 들어서 흐뭇하다. BBC싸이트를 스토킹하겠다 이제. 유투브에서 발견한 The Homecoming 도 훌륭했다. 내용은 전혀 이해 안 되지만 -_-;; 해롤드 핀터 작품이 뭐... 그렇지. The Homecoming은 2007년에 제작한 것인데 무려 작가인 해롤드 핀터가 주연을 맡았다. 맥스 역. 원래 배우 출신이라 들었는데 처음에는 마이클 갬본이 하는 줄 알았다. 훌륭해 훌륭. 마이클 갬본이 샘. 사무엘 웨스트가 레니. 루퍼트 그레이브스가 테디. 그리고 지나 맥키(Forsyte Saga 생각나고...)가 루스 역. 나 예전에 이거 읽었는데 하나도 생각이 안난다. 읽는 날 어디 도망갔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