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오더블

연극+책 2020. 5. 28. 00:23 Posted by 바나나피쉬

매달 구독은 하고 있지만 집중해서 듣지도 않고 몇 달에 걸쳐 하나씩 간신히 끝내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번 달은 벌써! 끝장을 보았다. 제목은 Pretty Things. Jannelle Brown의 소설이다. 신간 중에서 고른 거였나, 스릴러에서 골랐나, 아무튼 별생각 없이 골랐는데 생각보다 금방 끝냈다. 일단 나레이터가 두 명으로 여자 주인공 둘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를 각각 맡아 엄~청 잘 읽어준다. 주인공 중 하나가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라 시기상으로도 업데이트 잘 되었고, 내용 자체도 뻔한 듯하면서 흥미롭다. 처음 들으면서는 계속 헨리 제임스의 The Wings of the Dove (안 읽고 영화만 봤다. 헬레나 본햄-카터에 빠져 있을 때)가 생각났는데 다른 독자들도 궁금해했던 듯.

사기꾼 엄마 밑에서 영재교육(?)을 받고 자란 니나가 일생일대의 사기를 꿈꾸며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이자 미국 "귀족" 집안 출신(가족 성이 잘나가는 "그룹"의 이름이고 백여 년 이상 대를 이어 부유하게 살아온 집안)인 바네사에게 접근하는 것으로 사건이 시작된다. 니나는 부잣집 아이들의 인스타그램을 뒤지며 사기를 칠 상대를 고르고, 이들에게 접근해 물건을 훔쳐내는 식으로 엄마의 암 치료비를 충당하고 있다. 남자 친구 역시 사기꾼으로 아일랜드 출신에 배우 지망생이었던 터라 온갖 종류의 연기에 능하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훔쳐낸 앤티크 가구를 팔아주던 장물아비와 연락이 끊기고, 엄마의 암이 재발하고, 급기야 경찰까지 집 앞을 기웃거리자 니나는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한 탕 크게 하고 이 세계를 뜨기로 한다. 마지막 제물이 된 상대는 바네사 리블링. 인스타그램에서 패션 스타일로 인플루언서가 되었지만, 원래부터 대대손손 부잣집 자손으로 유명했고 니나와는 과거에 스쳐 지나가듯 만난 적이 있다. 바네사의 남동생 베니가 니나의 10대 시절 남친이었던 것. 바네사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파혼까지 당하자 어린 시절 지냈던 레이크 타호의 성으로 돌아가고, 그 성의 금고에 100만 달러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베니에게 들은 적이 있는 니나는 돈을 훔치기 위해 이름을 바꾸고 사기꾼 남자 친구와 함께 바네사에게 접근한다. 여기까지도 니나와 바네사가 왔다 갔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후에도 같은 사건을 다른 시점으로 전달해서 재미있었다. 이것만 보면 딱 The Wings of the Dove. 헨리 제임스 소설도 미국 졸부집 딸에게 영국인 커플이 접근하는 내용이었던 기억인데, 소설에서는 남자가 너무도 순수하고 병약한 미국인 졸부 딸에게 빠져버리고 말았던 듯. 그래서 헐... 혹시 같은 내용? 했는데... 사건이 팡팡 터지지요.

내용이 참신하진 않지만 (거기다 이게 그렇게 오랫동안 마음에 담을 일인가... 싶은 부분이 많았다) 구성이 잘 되어있고, 무엇보다 끝까지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비밀도 생각보다 빨리 밝혀지는 등, 고구마 구간 없고. 그리고 나레이터의 퍼포먼스가 좋다. 물론 남친의 아일랜드 액센트는 흠... 했지만,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 액센트가 거의 안 남아 있다는 설정이니 그러려니 싶기도. 니콜 키드먼이 아마존 프라임 드라마로 제작도 한다는 듯? 한국에는 아직 출간이 안 된 것 같던데 이것도 나오면 꽤나 인기 끌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