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s Speech

Colin Firth 2011. 1. 11. 11:12 Posted by 바나나피쉬

골든 글로브 노미네이션이 부끄럽지 않은 잘 만든 영화.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고 대중 앞에서 말하는 데에 엄청난 공포를 느끼는 왕자와 (Duke of York, 둘째 아들인데 장남이 미국 출신의 이혼녀와 결혼하면서 왕위에서 물러나는 바람에 졸지에 George 6세가 되었다) 호주 출신의 speech therapist가 우정을 쌓으며 장애를 극복하는 버디 무비 쯤 되겠다.

라디오를 통해 왕가와 대중이 소통하기 시작한 시대에 말을 더듬는 것 뿐만 아니라 입도 제대로 열지 못하는 왕의 비애, 공포, 책임감 등이 절절하게 드러난다. 거기다 배경은 히틀러가 연속 3시간 연설로 대중을 장악하고 2차 세계 대전에 돌입하던 전란의 시대. FDR이 fireside chats로 미국인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주던 때 아닌가. 예전 읽은 논문 중에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이 되기 전부터 라디오로 연설을 하거나 (어차피 대본을 읽는 거지만) 크리스마스, 신년 인사 등을 전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힘들어해서 일찍부터 대신 역할을 떠맡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콜린 퍼스가 말더듬는 연기를 너무 잘해서 보는 내가 다 불안하고 안타까울 정도. 실제로 조지 6세의 연설 녹음을 들으면서 연습했다고 하는데, 구할 수 있으면 한 번 들어보고 싶다. 처음에는 잘 나가다가 중간부터 무너져서 끔찍하게 오랫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하는데. 라디오 듣던 국민들은 얼마나 답답했을 지 (왕이 바보라고 기가막혀 했을 수도), 그리고 말하려 해도 할 수 없던 왕은 또 얼마나 비참했을 지.
 
미국에서는 f-word 가 너무 많이 나와서 R등급을 받았다만 (3개 이상이면 등급이 올라 간다고) 내용 자체로는 어지간한 PG-13 영화보다 덜 자극적이다. 콜린 퍼스는 항상 오만과 편견의 다시 역이 너무나 큰 짐이 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50줄에 접어들면서 적역을 잘 찾는 듯 하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중간 중간 엉뚱한 영화 (범죄자, 사이코, 찌질남, 게이)도 많이 찍었고 연기도 다 잘 하지만 젊었을 때의 매력이 좀 사라지니 더 괜찮아지는 듯. 최고급 양복을 입고 등장하는데 키가 커서 그런지 비싼 옷이라 그런지 정말 기품이 흘렀다 -_-;;

오만과 편견에서 콜린 퍼스와 연기했던 제니퍼 일리가 제프리 러쉬가 맡은 speech therapist의 부인으로 등장한다. Duchess of York로는 헬레나 본햄 카터. 신분은 높지만 남편을 위해 평민에게 코치를 받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역할이다.

대사도 꽤 재미있고 화면도 예쁘고 보고 나면 마음이 훈훈해 지는 영화. DVD 사려고 신청해놨다. 영국에서는 좀 일찍 개봉했으테니 조만간 (3-4개월?) 나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