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

연극+책 2011. 1. 27. 16:18 Posted by 바나나피쉬

거의 딱 10년 전에 드라마 수업을 들었다. 텍스트로 읽고 분석하는 수업이고 다 강의만 하는 거라 편할 줄 알고 들었는데 결국 점수는 안 좋았다. 그래도 듣도 보도 못했던 극작가들을 알게 되고 그들의 작품을 알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좋았다고 할 수도.

그 수업에서 읽었던 것 중 하나가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 사전 끼고 앉아서 낄낄거리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서 루퍼트 에버렛이 주연한 An Ideal Husband 를 봤는데, 대사 중에, To love oneself is the beginning of a life-long romance 를 듣고 무한 감동을 받은 기억도. 나중에는 오스카 와일드 무덤도 찾아갔었다. 키스 자국만 무수하게 남은 비석도 보고 (비 와서 색이 바랬다만) 외설적이라 파손-_-;;되었다는 천사 상도 보고 왔었지.

리바이벌이 꽤 많이 되었던 걸로 아는데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책도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가물가물 하고, 콜린 퍼스와 루퍼트 에버렛이 나온 영화 버전도 본 지가 2년은 되어서 중간에 둘이 부르는 노래 말고는 생각나는 게 별로 없었다. 충격적인 결말이야 알고 있었지만. 연극에서는 Lady Bracknell 을 남자 배우가 맡는 게 관행이라고 해서 그런가...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눈에 띄는 게 Lady Bracknell 뿐인 듯 관련 기사는 모조리 그 쪽으로 치우쳐져 있더군.

유미주의인지 탐미주의인지를 추구한 작가답게 대사가 기발하고 재미있다. 제일 유명한 대사 중의 하나가 아마도, To lose one parent may be regarded as a misfortune; to lose both looks like carelessness (대충 이런 내용) 이었던 듯. 다들 웃느라 정신없었다. 거기다 프리뷰 때라 그런지 자잘한 실수도 있어서 (소품을 떨어뜨린다거나, 담배 불이 안 붙는다거나) 보는 재미야 쏠쏠했다. 근데 안 들려 ㅠ_ㅠ 왜? 영국식 영어라? 진짜?

The King's Speech

Colin Firth 2011. 1. 11. 11:12 Posted by 바나나피쉬

골든 글로브 노미네이션이 부끄럽지 않은 잘 만든 영화.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고 대중 앞에서 말하는 데에 엄청난 공포를 느끼는 왕자와 (Duke of York, 둘째 아들인데 장남이 미국 출신의 이혼녀와 결혼하면서 왕위에서 물러나는 바람에 졸지에 George 6세가 되었다) 호주 출신의 speech therapist가 우정을 쌓으며 장애를 극복하는 버디 무비 쯤 되겠다.

라디오를 통해 왕가와 대중이 소통하기 시작한 시대에 말을 더듬는 것 뿐만 아니라 입도 제대로 열지 못하는 왕의 비애, 공포, 책임감 등이 절절하게 드러난다. 거기다 배경은 히틀러가 연속 3시간 연설로 대중을 장악하고 2차 세계 대전에 돌입하던 전란의 시대. FDR이 fireside chats로 미국인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주던 때 아닌가. 예전 읽은 논문 중에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이 되기 전부터 라디오로 연설을 하거나 (어차피 대본을 읽는 거지만) 크리스마스, 신년 인사 등을 전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힘들어해서 일찍부터 대신 역할을 떠맡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콜린 퍼스가 말더듬는 연기를 너무 잘해서 보는 내가 다 불안하고 안타까울 정도. 실제로 조지 6세의 연설 녹음을 들으면서 연습했다고 하는데, 구할 수 있으면 한 번 들어보고 싶다. 처음에는 잘 나가다가 중간부터 무너져서 끔찍하게 오랫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하는데. 라디오 듣던 국민들은 얼마나 답답했을 지 (왕이 바보라고 기가막혀 했을 수도), 그리고 말하려 해도 할 수 없던 왕은 또 얼마나 비참했을 지.
 
미국에서는 f-word 가 너무 많이 나와서 R등급을 받았다만 (3개 이상이면 등급이 올라 간다고) 내용 자체로는 어지간한 PG-13 영화보다 덜 자극적이다. 콜린 퍼스는 항상 오만과 편견의 다시 역이 너무나 큰 짐이 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50줄에 접어들면서 적역을 잘 찾는 듯 하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중간 중간 엉뚱한 영화 (범죄자, 사이코, 찌질남, 게이)도 많이 찍었고 연기도 다 잘 하지만 젊었을 때의 매력이 좀 사라지니 더 괜찮아지는 듯. 최고급 양복을 입고 등장하는데 키가 커서 그런지 비싼 옷이라 그런지 정말 기품이 흘렀다 -_-;;

오만과 편견에서 콜린 퍼스와 연기했던 제니퍼 일리가 제프리 러쉬가 맡은 speech therapist의 부인으로 등장한다. Duchess of York로는 헬레나 본햄 카터. 신분은 높지만 남편을 위해 평민에게 코치를 받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역할이다.

대사도 꽤 재미있고 화면도 예쁘고 보고 나면 마음이 훈훈해 지는 영화. DVD 사려고 신청해놨다. 영국에서는 좀 일찍 개봉했으테니 조만간 (3-4개월?) 나오지 않을까.

Blithe Spirit

Rupert Everett 2009. 3. 27. 01:37 Posted by 바나나피쉬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Blithe Spirit 을 보고 왔다. 혹시 대역이 나오는 거 아닌가 조마조마했는데, 전원 다 출연 ㅠ_ㅠ  지금까지 꽤 많이 쇼를 봤지만 대역이 하나도 안 나왔던 건 이번이 처음이다.

from New York Times 

첫번째 부인이 죽은 후, 재혼하여 잘 살고 있던 소설가가 작품의 영감을 얻기 위해 영매를 불러온다. 엉터리인 줄 알았던 할머니 영매가 뜻하지 않게 첫번째 부인의 영혼을 불러내면서 모든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완벽한 코메디라 전혀~ 심각하지 않지만, 대사가 감동이다. (반은 못 알아들었다. 너무 빨리 말해, 전반적으로 목소리가 작아--이 동네 연극은 마이크를 안 쓰나 보다--사람들이 웃어서 안 들려, 그리고 내 영어귀의 한계로)

Angela Lansbury는 올해 83세라는데 너무나 정정하고 춤도 잘 추고 대사도 정확해서 놀랬다. 탐정 제시카 할머니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얼굴은 그대로라 신기.

Rupter Everett은 올해 50. 근데 이렇게 멋있어도 되는 것이냐!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지 중년 아저씨의 턱이 되어 버리기는 했지만 (안 그래도 긴 얼굴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상류층 영국 신사 연기는 완벽했다. 거기다 조금씩 보여주는 새침함까지! 감동이다. IMDB에 실린 인터뷰 중, I have nothing to complain about... except maybe people wondering if a queen like me can butch-it-up enough to play a convincing straight man. 이거 정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제임스 본드 시켜도 잘 할 텐데.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마지막 장면에서처럼.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어도 게이 James Bond 가 등장하려면 몇 십년 더 기다려야겠지. bisexual로 만들어 버려도 괜찮을텐데... Bond Girl 대신 Bond Boy 라도. ^-^

41년에 발표된 연극 리바이벌이고, 영화로도 만들어져서인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찌나 많으신지. 거기다 이렇게 반응 좋은 관객은 오래간만이다. 보통은 배우들이 등장할 때 아무도 박수치거나 환호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어제는 완전 다들 난리. 심지어는 퇴장할 때까지도 박수 치고, 조금만 재밌는 대사가 나와도 어찌 그리 크게 (시끄럽게 -_-;) 웃어주시는지... 연극 시작할 때 핸드폰 꺼달라는 멘트가 나오는데, 이것도 대박. 인터넷 뒤져보니까 Rupert Everett 이 하는 거라는데, 아저씨 너무 좋아요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