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마(2015)
보려고 예전부터 쟁여놨다가 이제야 끝냈다. 어쩌면 이리도 시기적절한 영화인지. 요즘 일어나는 사건과 딱 맞아 떨어진다. 이렇게 희생에 희생을 거듭해야만 문제가 제기되는구나. 시간이 걸릴지라도 결국은 해결까지 되리라 본다. 인식이 바뀌는 데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일단 바뀌기 시작하면 문제는 많이 풀릴 거다. 우리나라는 미국 60년대를 답습하는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80년대는 되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60년대다. 그렇다고 미국이 문제가 없다는 건 물론 아니다.
아무튼 영화로 돌아가자면.
일단 다들 연기 잘 하고 실제 인물과도 비슷했다. 특히 말콤 X 역 맡은 배우보고 깜짝 놀랬다. 똑같이 생겼네. 중간에 자주 등장하던 앤드류 영 역할의 배우는 눈에 익다 했더니 The Knick에 나왔었구먼. 재미있는 점은 주연 배우 대부분이 영국 출신이라는거. 린든 존슨 역의 톰 윌킨슨도, 조지 월리스 역의 팀 로스도, 심지어 마틴 루터 킹 역의 데이빗 오예로오도. 돈이 덜 들어서 영국 배우 쓰나. 오예로오도 MLK랑 비슷한 느낌이다. MLK 측에서 오리지널 연설문 못 쓰게 해서 재창작했다고 들었는데 마지막 연설 멋있었다. 영국 출신이라 미국 흑인 특유의 느낌을 모를텐데 (이것도 편견인가) 어찌 저리 연설을 잘하는지, 역시 배우는 배우네. 린든 존슨을 부정적으로 그렸다고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만 영화는 영화일 뿐 다큐가 아니기 때문에 내용 상 전혀 문제 없었다. MLK의 부정에 대해서도 언급을 해줘서 우상화를 다소 막았고. 여자 배우들이 너무 예뻐서, 거기다 너무 하얘서 좀 신경쓰이긴 했지만 20세기 초반의 사회 운동 이끈 흑인들이 다 백인 피 많이 섞인 혼혈인 걸 생각해 보면 딱히 걸고 넘어질 부분은 아닌 듯. 거기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꼭 등장하는, 백인 영웅이 마지막에 모두를 구하는 그런 결말이 아니라 좋았다. 사실 그런 식으로 끌어나갈 수도 없었지. 역사가 그렇지 않은데.
존 루이스 이름이 귀에 익다했는데, 나 루이스 자서전도 읽었었다... 대충 읽어서 기억이 안나나. 한 번 다시 찾아봐야겠다. 마지막 셀마에서 몽고메리로 가는 행진은 5일이 걸렸는데, 당연하게도 그만큼 많이 걸어 본 사람이 없었으니 다들 발에 물집 생겨서 힘들고, 쉬라고 농장 내 준 사람들은 나중에 공격당하고, 길가에는 남부연합 기 흔들고 욕하는 백인 천지. 진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목숨 걸고 운동을 할 수 있을까. 2번째 셀마 행진에는 MLK의 호소를 듣고 전국에서 몰려온 백인 종교인들이 참여하는데 이것도 감동적이고. 역시 진정한 종교인들은 이래야 하는구나 싶었다. 처음 보면서도 엉엉 울었는데, 다시 볼 때마다 운다. 아이고 슬퍼라. 날마다 암살 위험 속에서 사는 남편을 지켜봐야 했던 부인과 아이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몇 년을 오늘일까 내일일까 조바심내면서 살다가 마침내 남편이 죽었을 때는 오히려 체념하게 됐을까. 모든 걸 내놓고라도 따를 수 있는 영웅이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나.
민중의 적
LG 아트센터 패키지 끊은 것 중 2번째. 토요일 3시라 귀찮아서 간신히, 그것도 지각할 뻔하면서 갔는데 재미있었다. 중간에는 좀 졸렸지만... 앞에서는 여러 명이 헤드뱅잉 하다가 깨서 웃다가 하고 있더라. 입센 또한 얼마나 시기적절하신지. 100년도 더 전에 쓰여진 극이 아직까지 어필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우면서도, 인간사를 바꾸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게 해 준다. 그래서 의미가 있는 건가. 샤우뷔네 극에서는 시의회에서 연설하는 대신 토론으로 바꿨는데, 요즘 처자들은 말도 어찌나 조리있게 잘 하는지, 이 나라의 미래가 밝구나... 또 새삼 느끼고. 그런데 이런 처자들의 능력을 개발해주기는 커녕 집에다 처박아놓고 밖으로 못 나오게 막는게 우리의 현실이겠지.
아무튼 집에 와서 민중의 적 오디오북이 있나 뒤졌더니 LATW에서 했더라. 졸면서 들었는데 원작은 나잇대가 훨씬 높고, 하나로 묶었던 여자 캐릭터가 사실 둘인데다, 결말이 완전히 달라서 비장미가 더하다. 샤우뷔네 극은 다들 젊은이라 무너져도 언제든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이 있고, 아직 젊기 때문에 방향을 바꿀 가능성도 있어보이는데 (배우들도 젊어서인지 요즘 세대라 그런지 원작의 결말에는 동의하지 못했다고), 원작은 중년을 지나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벌기도 힘들고, 부양할 가족에 대한 부담도 더 크고, 거기다 신념이 바뀔 일도 없어 보여서 더 불쌍했다고나 할까.
입센은 인형의 집, 유령, 헤다 가블러, 로스메르 저택 (이것만 연극으로 봤다)에 민중의 적까지 끝냈으니, 이제 들오리랑 요한 가브리엘 보르크만에 도전해야겠다. 브랑이랑 사회의 기둥도 어딘가 쟁여 놓은 기억인데 과연...
Hollow Crown 시리즈 2
이것도 미뤄놨다 시작했는데, 아직 헨리 6세 파트 1밖에 못 끝냈다. 내용을 몰라... 장미 전쟁이 어찌됐는지 다 잊었어... 거기다 셰익스피어는 워낙 뻥을 많이 쳐놔서 이걸로는 따라갈 수가 없지. 그래서 마이크 워커의 플란타지넷을 들었다. 예전에 리처드 2세 보고 플란타지넷 시리즈로 들었더니 이해가 잘 되더라고. 하지만 이번에는 들어도 어떻게 되는 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리처드 3세를 기다리며 중간 단계를 잘 넘어서야 할텐데. 예전에 리처드 3세 봤을 때도 내용 하나도 모르는 채로 가서 도대체 이 인물들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 끝까지 잘 이해가 안 됐는데 (거기다 케빈 스페이시가 리처드 3세로 나와서 나이가 좀...) 이번은 그보단 나으리라 믿는다.
헨리 6세 역을 맡은 톰 스터리지 연기 잘 하고. 우유부단의 극치를 달리고 나중에는 미쳐버리기까지 하는 왕 역에 꽤나 잘 어울린다. 기본적으로 소심하고 성정이 유약하나 왕은 왕인게지. 소피 오코네도도 괜찮고. 리처드 3세에는 거의 유령같은 인물로 나오던데 과연... 사무엘 웨스트가 오랜만에 정상적으로 나와서 좋았다. 연극이었으면 헨리 6세역 했을텐데 슬프다. 으흐흑. 그나저나 헨리 6세 2부와 리처드 3세는 언제 보나. 테넌트의 리처드 2세도 쟁여는 놨는데 언제쯤 볼 수 있을지. 우선 킨들로 텍스트를 다운받아야 할 것인가.